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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뉴스]누룽지와 커피자루로 ‘사회적기업’을 한다고?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수정2018-05-02 13:26:14
 


누룽지와 커피자루로도 ‘사회적기업’을 한다. 

고용노동부는 40개 기관을 사회적기업으로 신규 인증해 1937곳이 인증받은 사회적기업으로 활동하게 됐다고 1일 밝혔다. 올해 새로 인증받은 사회적기업들은 대중음악을 통한 사회공헌, 자원 재활용을 통한 환경문제 해결, 도박중독자 일자리 제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강원 정선군에 있는 ‘깜밥이날다누룽지자활협동조합’은 강원랜드 인근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해 도박중독자의 사회복귀를 돕는 자활프로그램과 일자리 제공을 하고 있다. 깜밥은 누룽지의 강원도 방언이다.

누룽지가 왜 날게 됐을까. 2008년 12월 정선군의 한 교회 옆에서 누군가 목을 매 자살했다. 도박중독자였다. 이전에도 여관이나 등산로에서 사람이 숨진 채 발견된다는 얘기는 들려왔다. 남의 얘기 였던 일이 바로 옆에서 벌어지자 주민들은 도박중독의 심각성을 체감하게 됐다. 사건을 계기로 김석기씨(깜밥이날다누룽지자활협동조합 대표)는 인근 정선랜드에서 도박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식사 봉사를 하게 됐다. 3년 동안 6000여명의 ‘게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정말 도박을 끊고 일하고 싶다”고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들이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고민을 하던 차에 논산자활센터에서 ‘전국에서 제일 맛있는’ 누룽지를 만들어 판매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룽지는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야 하고, 만드는 데 드는 시간도 길다. 자활에 좋은 아이템이었다.

김씨가 2016년 설립한 협동조합에서는 도박중독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도박중독에서 치유되어 사회복귀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다. 배우자의 도박중독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주민도 채용했다. 이 협동조합의 모토는 “꺾인 무릎 일으켜 세우는 ‘누룽지의 힘’”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하이사이클’은 버려지는 제품에 새로운 가치를 입히는 ‘업사이클링’ 사회적기업이다. 업사이클링(upcycling)은 기존에 버려지던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upgrade) 의미가 있다. 하이사이클에서는 ‘커피자루’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

커피콩을 옮기고 나면 쓸모가 없는 커피자루를 이용해 에코백을 만들고, ‘다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원두 찌꺼기로는 커피나무를 재배할 수 있는 화분을 만들어서 ‘커피팟’으로 판매하고 있다. 호텔 리뉴얼 과정에서 버려진 린넨 천을 활용해서 반려동물용 샤워가운 ‘마음:이’도 만들었다. 손쉽게 버려지는 물건들을 재발견해 자원 순환의 가치를 환기하고, 생활 속 환경보호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제품 생산과정에서 시니어클럽을 비롯한 지역 자활센터, 장애인복지관 등과 연계해 취약계층에 일자리도 제공한다.


서울 양천구에 있는 ‘두팔로(Do Follow INC)’는 예술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다. 학교 밖 청소년 및 취약계층아동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창의학교’에서는 100명의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진로 계획과 자아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문화예술교육을 제공한다. ‘나는배우다’를 통해서는 학교밖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무대를 꾸미는 과정을 지원한다. 재능은 있지만 마땅히 꿈을 펼칠 공간이 없는 20대 초중반 뮤지션들을 위해서 쇼콰이어그룹 하모나이즈를 구성해 진로콘서트 등 다양한 음악활동을 돕기도 한다. ‘두팔로’라는 이름은 무대에 서서 ‘할 수 있다’는 DO와 ‘함께 나아가자’는 Follow 두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꿈더하기 사회적협동조합’은 커다란 수영장이 있는 구청스포츠센터에서 ‘건어물’을 만진다. 발달장애인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일상에서 사람들이 쉽게 소비하는 다시마, 미역, 김, 멸치 등을 생산·가공하고 있는 것이다. 건어물 외에도 견과류, 과일칩, 누룽지, 과일청 등 취급하는 물품도 다양하다.

발달장애인 부모모임인 ‘함께하는 영등포장애인부모회’는 2016년 12월 영등포구의 지원을 받아 장애인들의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을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됐다. 자립지원을 위해 직접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업무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10여명의 장애인이 일하고 있으며, 향후 고용확대를 위해 전문적인 교육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 외 저개발국의 커피생산 농가를 지원하는 공정무역 커피 업체, 취약계층 아동들의 위트 있는 그림을 아트상품으로 판매하는 기업 등 다양한 사회적기업들이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16년부터는 사회적기업 인증 외에도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소셜벤처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예비사회적 기업’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은 영리기업과 비영리기업의 중간 형태로,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재화·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말한다. 시작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공근로, 자활 등 정부재정지원으로 만든 일자리가 늘어났지만, 실제 안정적인 일자리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2000년대 들어 고용없는 성장이 고착화되면서 다양한 대안모델들이 소개됐다. 이중 단체나 비영리법인 등 ‘제3섹터’를 활용해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하는 유럽의 사회적기업 제도가 관심을 받았다. 2007년 7월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시행되면서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게 됐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정보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www.socialenterprise.or.kr)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기업 인증 신청을 희망하는 기업이나 단체는 16개 광역단위 별로 설치되어 있는 권역별 통합지원기관(1800-2012)의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으로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은 “기존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서비스 및 일자리 제공 뿐만 아니라 환경문제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기업이 탄생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